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둔덕면 방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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둔덕면 방하리
  • 둔덕면(屯德面)의 중앙에 위치하고 동은 장갓재를 넘어 위대밭골이고 서쪽은 둔덕천(屯德川)을 경계로 거림리(巨林里)이고 남은 하둔리(下屯里)와 접하며 북은 산방산(山芳山) 밑의 큰마을인 대몰 아래에 마을이 형성되었으며 본래 산방방(山芳坊)에 속하였다가 고종(高宗) 32年(1895) 방하리(芳下里)가 되었고 1915년 법정리가 되었으며 방하(芳下)와 죽전(竹田)의 행정리가 있다.
방하(芳下)마을

산방리(山芳里)의 밑에 있으니 방하리(芳下里)라 하였고, 1913년 처음으로 면사무소를 두었으며 일본인의 입주가 늘어 1928년 하둔리(下屯里)로 옮겼다.

죽전(竹田)마을

둔덕천(屯德川)의 지류로 죽전천(竹田川)이 있고 계곡따라 윗대밭골 아래 대밭골이라 부르며 동쪽은 답답골재를 넘어 거제면(巨濟面) 송곡(松谷)으로 가는 큰 길이 있었고 동남은 소랑개재를 넘어가는 좁은 골짝 마을이다.

공주(公主)샘

방하(芳下)마을의동편에 있는 찬샘으로 의종왕의 공주(公主)가 좋은 물을 찾아 자주 다녔다하여 공주샘이라 한다.

고려(高麗)무덤

의종왕(毅宗王)이 정중부(鄭仲夫)의 경인난으로 24年(1170) 8月 30日 군기감(軍器監)에 수감되었다가 10月 2日 거제(巨濟)로 쫓겨올때 추종하던 백관과 호위군이 수 없이 따라왔으며 동 27년(1173) 왕이 복위를 꾀하여 경주(慶州)에 나갔다가 정중부(鄭仲夫)가 보낸 이의민(李義旼)에게 시해 당하였고, 명종(明宗) 26年(1196) 판병부사(判兵部事)였던 이의민(李義旼)이 삼족참형될때까지 27년간 개성(開城)으로 환도하지 못하고 거제현(巨濟縣)에 살고 있었다. 늙은 배관이나 가족들이 죽었으니 방하(芳下)마을 아래쪽 고름등에 고려장지를 설치한 곳이 고려무덤이다. 1950년 한국전쟁때 서울의 대광중학교(大光中學校)가 피난와서 학교를 건설하자 그릇, 칼, 수저 등이 많이 발굴되었다.

답답골재

둔덕(屯德)에서 읍내(邑內) 서부(西部)로 통하는 큰길로 윗대밭골 깊숙히 올라가 소랑(小浪)고개를 지나 송곡(松谷)고개에 이르고 급경사의 산길을 숨가쁘게 오르고 내리니 답답골재라 하였다.

돌비석거리

윗 아래 대밭골 사이에 있는 돌부처의 비석으로 옛날 고기잡이 갔던 남편을 기다리다가 돌비석이 되었다하여 남녀 한쌍의 부처 비석이 있었다.

둔연(屯淵)들

방하(芳下)마을 아래의 넓은 들판으로 둔덕천(屯德川) 옆에 찬물이 솟아오르는 연못의 맑은 물을 논에 대어 풍년을 가져오니 둔연들이라 이름하였다.

매주산(埋珠山)

아래 대밭골 앞산으로 높이 209m에 삼각점(三角点)이 있으며 의종왕이 쫓겨올때 보물을 많이 가져와 신하들이 구슬을 묻었다고 이름하였으나 알길이 없다.

삿갓배미

아래대밭골 서쪽 경사가 심하여 비가 올때에 삿갓을 벗어 놓았더니 논 한뱀이 없다하여 소란을 피우다 삿갓을 들어보니 그 밑에 작은 논 한도가리가 있었다는 것이다.

식기(食器)도가리

방하(芳下)마을 동쪽에 있는 논으로 1885년 을유년 흉년때 밥 한그릇과 바꾸어 굶주림을 이겼다는 전설의 논이다.

장갓재

방하(芳下)마을 동쪽 윗대밭골로 넘어가는 작은 고개로 장가들때 가마타고 오고 가는 것을 보니 장갓재라 하고 거제읍의 장터에서 삼십리를 걸어오다 밤이 늦어 도깨비를 만나 장거리와 갓을 잃어버렸다고 장갓재라 전래하는 고개이다.

찬물도랑보

둔연(屯淵)들에 물을 주는 맑은 찬물이 용출하는 도랑보이다.

담당자 정보

담당부서
안전도시국  도시계획과  도시행정담당 
담당자
윤경태 (☎ 055-639-4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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