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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 45년(1952) 임진왜란(壬辰倭亂)때 거제의병장(巨濟義兵將) 신응수(辛應壽), 윤영상(尹榮祥), 김희진(金希璡)의 삼장사(三將士)가 하청(河淸)장터에서 분탕질하던 왜군을 습격하여 섬멸하였으니 이를 설욕전이라 전하며 이 큰 고개를 덕치(德峙)라 하였다.
행정리(行鄭里_는 아니지만 옛날 문암리(門岩里)가 있었고 이목(梨木)골로 들어가는 양쪽산 좁은 골짜기에 두 개의 큰 바위가 우뚝 서 있으니 문기둥 같아 문암(門岩)이라 하였으며 지금은 이목(梨木)댐의 제당이 골짜기를 막고 있다.
문암 동쪽 연초천 건너에 있는 들에 건너들 보도있다.
건너들 마당배미 위에 있는 논이다.
문암 북쪽 진등 위쪽에 개구리 모양의 바위가 있다.
문암 동북쪽에 큰 돌이 있는 들에 보가 있다.
문암 서남쪽 들에 있는 낮은 독메산이다.
문암 뒷쪽에 있는 골자기다.
건너들 위 등성이에 있는 바위다.
건너들 고래실 위쪽에 모래가 많은 들이다.
문암 서북쪽 산위에 가뭄때 무지개가 서는 바위다.
문암 동쪽에 두 개의 큰 바위가 문 기둥 모양으로 서 있다.
문암 서쪽 안골 서쪽에 자갈이 많은 골짜기다.
문암 북쪽에 부엉이가 살았다는 바위다.
문암 서쪽 골짜기에 임진왜란때 왜군들이 야영을 하던 곳이다.
문암 어귀에 문암제(門岩齊)라는 서당이 있었고 서낭당의 돌탑이 있었다.
불신골 서북쪽 안에 있는 골짜기다.
문암 동북족에 오씨가 살았다는 골짜기다.
제덕치에서 하청으로 넘어가는 옛날 하청장터가 있던 고개마을이다.
문암 북쪽에 있는 긴 등성이다.
문암 서족에 가매장한 채봉이 있었다는 골짜기다.
문암 서남족에 있는 큰 골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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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 2020-11-16